내가 일하는 근무지엔 워킹맘들로 수두룩하다. 장애학생들의 활동을 보조하는 '특수교육실무원'들 20여 명 중 한두 명을 빼면 모두 남편과 자녀들을 먹여 살린다.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로 떨어지는 돈은 많아봐야 150만원 남짓이다. 오후 4시40분 함께 퇴근할 적이면 단골로 나오는 대사가 있다. "오늘 뭐해 먹지?" 그렇다. 이들은 직장일 말고도 할 일이 산더미다. 집으로 돌아가면 식구들 먹일 밥상을 차린다. 밀린 빨래며, 청소며 하면 어느새 밤 여덟 시, 아홉 시를 훌쩍 넘긴다. 낮에 학생들 밥 먹이고, 똥오줌 가리는 것 도와주고 난 피곤함이 몰려온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을 뿐인데 스르르 졸음이 밀려든다. 피로에 포획당한 40대 중년의 삶이 저문다. 영화칼럼니스트 김세윤이 라디오 방송에서 '40대의 시절'을 이렇게 정의내렸다. "'40대'는 예술영화로 정의내릴 수 있어요. 아주 지루하거든요."


친분 있는 워킹맘 A씨는 전문대를 졸업한 뒤 곧장 무역회사에 취직해 20대를 보냈다. 30대의 첫 무렵에 결혼에 골인하고, 뒤이어 아들내미 하나, 딸내미 하나를 차례대로 낳았다. 애 키우느라 다니던 직장을 포기했다. 그런데 자영업 하는 남편의 벌이로는 키우기 만만찮았다. 독서실 카운터도 보고, 떡집 알바도 하고, 이 일 저 일 가릴것없이 생계 전선으로 출정했다. 메뚜기 뜀박질하듯 일하다 우연히 시교육청 홈페이지에 '특수교육실무원' 채용 공고가 떴단다. 이 땅의 '경력단절여성'들에겐 이런 일자리야말로 희소식이다. 10여 년 만에 펜을 들고 줄 그어가며 이론서 공부를 했다. 필기시험을 치르고, 실기 면접도 봤다. 경쟁률 2~3대 1이었지만 '혹시나 떨어지면 우얄꼬' 하며 노심초사했단다. 다행히 붙었다. 결과가 발표된 날, 그리 기쁠 수가 없었다.


우리네 세상에서 여성들이 온전히 일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우리나라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6.9%다. 남성(78.2%)에 비해 21% 가량 낮은 수치다. 남녀의 임금격차 또한 37%로, OECD 평균 15%에 비해 두 배 정도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19%)과 일본(27%)보다 심각하다. 가깝게는 이태영 박사부터 저 멀리 크래프트, 보부아르, 도러시 데이까지 숱한 여성운동가들이 여권을 신장시키려 헌신했다. 그럼에도 유독 '노동현장'에서 여성들의 삶은 처연하다. 우리만 그런 줄 알았는데, 영화 <인턴>을 접하니 '만국공통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역시나 아직까진 그렇구나' 하고 끄덕인다.


'워커홀릭'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은 지난 1년 반 동안 신생 의류 쇼핑몰 회사 '어바웃더핏'을 큼직하게 키워냈다. 미팅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심지어는 상품의 포장까지 일일이 코칭하는 꼼꼼함과 노련미가 엿보인다. 그런 그도 딸 하나를 둔 엄마다. 집에서 잠이라도 드나 했건만, 그새 노트북을 꺼내 작업에 몰두한다. 이쯤 되면 슈퍼맨...아니 슈퍼우먼이다. "하루 수면 시간이 7시간 미만일 경우, 7시간 이상 잘 때부터 비만이 발생할 확률이 38% 높아진다."는 모친의 충언(?) 따윈 가볍게 한 귀로 흘려보낸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전문경영인(CEO)을 위촉하고 "당신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라" 충고하지만, 어찌 그리할 수 있겠나. 얼마나 많은 고생을 기울였고, 애정이 깃든 회사인데! 줄스는 회사만큼이나 가정에서의 무게감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각자 역할을 분담하며, 당신은 파티에 내놓을 음식 18인분을 준비하라는 다른 학부모의 말에 줄스는 순순히 '오케이' 한다. 그 필사적인 사수 의지는 '일'과 '가정' 모두를 지키다 한쪽에서 끝내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상시화된 불안으로 이어진다. '전업주부'인 남편이 외도를 하는 걸 알아차렸지만 대놓고 역정을 내지 않는다. 만일 불같이 화라도 냈다간 이혼해서 '나홀로 외톨이'가 된다면? '고독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예감하며 울먹이는 줄스 앞에, 칠순 인턴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가 "그럼 나와 몰리 묘지 사이에 묻히면 되지요." 하고 위로한다. 그래도 그렇지. 한평생의 동반자인 남편과 자녀가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을 모두 회복하고도 남을까.


여성 노동자에게 가정은 또 다른 굴레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충분히 해소되지 못한 채 가정에서 심화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같은 경우 육아휴직과 양육지원책의 수준은 아직도 미미한 실정이다. 유럽 각국은 양육은 남녀 모두의 책임을 전제로 깔고 정책 패키지를 내놓는다. 가령 프랑스는 오로지 자녀 수를 기준으로 110~400유로의 '가족수당'을 매달 지급한다. 독일의 '아동수당'은 부모가 직업훈련을 받고 있는 신분이라면 자녀가 27세가 되기 전까지(원래는 21세까지다) 계속 지급한다. 10년 전 지상파 드라마 <불량주부>가 화제를 낳으며 인기리에 방영됐다. 강산이 한 번 변했는데, 여전히 '남성 전업주부'의 상은 쉽사리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아무렇잖게 진열하는 말의 성찬도 유감이다. 줄스 오스틴의 꼼꼼한 성격을 두고 동료들 또는 CEO들은 "깐깐한 여자" "그래도 여자라서 완전히 믿고 맡기긴 어렵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남성 CEO들의 꼼꼼함은 '세심한 경영' '책임경영'으로 포장되고, 여성 CEO들의 그것은 '마귀할멈스러운 면모' '암탉이 울면 망한다'로 폄하돼야 하나. 여성은 직장에서 화장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고, 야근에 시달려 피부가 허옇게 뜨고 기미가 드러난 맨얼굴은 "어떻게 '여자'가 돼가지고 자기관리도 못하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하는 존재인가.


여성이 경영하는 국내 벤처기업이 2007년 501곳이던 것이 올해 6월 2481곳으로 집계됐다. 8년 사이 무려 5배나 급증했다. 생활용품 같은 실생활과 맞닿은 시장에 적합한 아이디어를 지니고서 창업했거나,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첨단제품을 파는 곳도 있다. 김호선 스파이카 대표가 내놓은 대용량 파일 공유 서비스 '선샤인'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한-미 양국 벤처캐피털로부터 21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민윤정 코노랩스 대표는 1995년 다음에 입사해 '다음 카페'와 '티스토리' 등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개발한 주역이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하등 다를 바 없다. 다른 게 있다면, 염색체의 다름일 뿐이다. 이 땅의 남성들에게 부탁한다. "여성들이 온전히 일할 자유를 허(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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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여름에 문화방송(MBC)에서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을 방영했다. 이준기와 남상미가 열연했는데, 이준기는 국정원 요원으로 일하며 태국·한국 등지를 거점으로 마약 판매를 하는 폭력조직에 들어가 프락치로 암약한다. 그러던 중 기억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국정원 요원이었단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만다. 드라마가 지배하는 시간적 분위기 또한 황혼이 드리우는 하늘이 자주 비친다. 아침 해가 뜰 새벽인지, 저녁이 다가오는 노을녘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 무렵 언덕에 비치는 동물이 내가 기르던 개인가, 나를 잡으러 오는 늑대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다.


아침 눈을 뜨자마자 조간신문을 들여다본다. 온갖 사건과 사고, 소식, 논평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중 '나의 기준'으로 미뤄 볼 때 '읽을 가치'가 있는 기사를 선별하는 작업은 중대사다. '과연 이 기사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기사도 있다. 하지만 매체의 명성 때문에 일단 믿기로 한다. 기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취재했을 지 100% 속단할 수 없으므로, 기댈 것은 이 매체가 얼마나 알려져 있고, 그간 매체의 이력에 오점을 남길 만한 오보가 있었는가 여부다. 언론은 요상하게도 터뜨릴 때는 샴페인 뚜껑 따듯 '펑' 터뜨리지만, 막상 오보가 나서 정정 보도를 할 때면 자그마한 한 구석에 눈에 보일까 말까한 활자 크기로 내보낸다. 마치 "누가 시켜서 우리는 '이 정도 선에서 보여주는 거야'"라고 외치는 것마냥.


"기자는 그저 눈에 보이는 사실(fact)을 쓸 뿐 진실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대중의 몫이다. 사람들이 보는 게 진실이지."라 말하는 보도국장(이미숙 분)의 한 마디가 영화의 주제의식을 꿰뚫는다. 이혼 도장 찍게 생긴 '위기의 남자' 허무혁 기자(조정석 분)는 방송사의 광고주의 비리 의혹을 캐서 보도했다가 잘리게 생겼다. 그런데 제보 전화 한 통을 받고 취재를 나갔더니 '왕건이' 하나를 잡았다. 서울 시민을 공포에 빠뜨린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단서를 발견한 것. 일순간 허무혁은 '스타 기자'로 등극하고, 온 나라가 허무혁을 주목한다. 그런데 그 제보는 '잘못된 제보'였다. (허위제보를 눈치 채는 바로 그 순간의 조정석 얼굴은 마치..."어떡하지 나?"라고 외치고 싶은데 마음 속으로 말을 되뇌는 그런...얼굴이다.)


하지만 사실에 대한 제대로 확인 없이 오로지 시청률, 구독률만을 위해 내보내는 언론사의 '경마 저널리즘'은 거짓도 진실로 둔갑시킨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정 작용을 시도하는 동시에 왜곡된 상황으로 끌고 들어간다. 언론의 보도를 접한 수용자들 중 일부는 경찰서 자유게시판에 연쇄살인사건이 마치 소설 <량첸살인기>와 흡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여기서 경찰이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언론사를 추궁하고, 허무혁 기자를 추궁하며 '사실을 제대로 확인'했어야 하나 끝내 소설 <량첸살인기>대로 살인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는 섣부른 단정을 하기에 이른다.


한편 진짜 살인범은 죽었는데, 가짜 살인범의 인터뷰 하나로 진짜 살인범이 가짜 살인범을 돕다 죽은 '용감한 시민'으로 둔갑하는 놀라운 풍경은 수용자들이 창조한 그림이다. 과거 연탄 봉사 활동에 참여한 사진 한 장은 살인범을 '용감한 시민'으로 확정짓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하나의 가치를 표상하는 증표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는 세태, 어쩌면 저널리즘의 단순화가 낳은 참사일지도 모르겠다. 'A가 왜 B가 될까, Z로 갈 여지는 없을까' 고민하기보단 'A는 B다. 이는 ~하기 때문이다.'는 단순한 도식만이 존재하는 언론들이 주를 이루기 있기에 그러하다.


수용자들은 미디어를 접하고 끊임없이 의견 표명을 하고 참여를 하겠지만 이 역시도 한계가 있다. 수용자들이 사건 면면을 들여다보기란 실상 어렵고, 들여다보더라도 주된 접촉 창구는 '언론'이다. 즉 언론의 생각을 빌려 수용자들이 자신의 말로 '변형'하여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언론에서 왜곡된 정보나 특정 가치에 편승하여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를 제공한다면, 수용자는 이를 '진실'로 받아들일 여지가 높다.


돌고 돌아, 여전히 언론이 중요하다. 사안을 해석하여 수용자들에게 정확히 판단할 근거를 제공하는 몫은 오롯이 기자의 몫이다. 수용자들이 일일이 사안을 해석하기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너무나 바쁘다. 정신 없다. 여유가 없다. 누군가는 대신 나서서 사안이 흘러온 연원과 가치, 앞으로 방향을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그래서 언론이 필요하다. 연례행사처럼 "언론이 위기"라고들 한다. 혹자는 "사양산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봤을 땐 그렇지 않다. 응당 언론이 해내야 할 임무는 막중하기에, 본연의 사명에 충실한다면 살 길은 있다. 마누라가 낳은 아이가 내 아이든 아니든, 내가 보는 것이 '진실'이라 믿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안내할 이는 '언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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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인터스텔라>에 버금가는 역작이 나왔다, 혹은 우주판 <캐스트 어웨이>가 나왔다며 흥분하더라. 그래서 <마션(The Martian)>을 봤다. 'Martian'...가만 보자, '화성인'을 말하는 건데? 그렇다면 '화성인'이 화성에서 생존하는 이야기겠군. 뻔히 드러나는 '생존 영화'의 한 부류겠거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영화관에 갔다.

광활하다 못해 황량한 붉은 땅의 화성은 "생명이 과연 있기는 한걸까?" "여기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의심을 품게 되는, '죽음의 땅'만 같다. 여기서 탐사를 하던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아레스3 탐사대가 모래 폭풍을 만나 화급히 탐사선으로 귀환한다. 이 과정에서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대원이 장비 파편에 맞아 폭풍 너머 어둠으로 빨려 들어간다. 대원들은 그가 "사망했다" 판단하고, NASA 역시 이를 기정사실화한다.

하지만, 마크 와트니는 죽지 않았다. 살아 있었다. 영화는 두 개의 '투쟁기'가 서사의 큰 축이다. 마크 와트니 스스로의 생존 투쟁과, 그를 지구로 귀환시키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노력 투쟁. 마크 와트니는 식물학자인 자신의 본업을 살려 '똥'을 거름 삼아 화성의 흙으로 '화성산 감자'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에 성공한다.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물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결코 만지지 말라는 '방사선 동위원소 배터리'를 꺼내 로버(이동 차량)에 장착해 기존 배터리 용량을 아끼는 센스를 발휘한다. 여기까진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빛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인이 하나가 된 '마크 와트니 귀환 프로젝트'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우주 예산이 깎여 나가는 흐름을 반영한 듯, 영화 속 NASA 역시 예산 확보에 전전긍긍하는 '좀스러운' 모습이 보인다. 냉전 시대 달에 인류의 발자국을 새기고, 인간의 목소리를 담은 레코드판을 우주선에 실어 쏘아 보내던 담대한 위상은 저 멀리 은하수로 날아갔다. 돈 한 푼에 매다는 NASA지만, 그럼에도 마크 와트니 한 사람을 위해 보급품을 실어 우주선을 쏜다. 지구로 귀환하던 대원들 역시 단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목숨이 달아날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를 구출하러 다시 화성으로 기수를 돌린다.

단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중하다는 원칙은 동서고금의 진리지만, 어째 내가 살아가는 이 땅에선 낯선 말씀이다. "살려야 한다"는 궁서체 글씨를 붙이고도 추가 감염자 관리에 실패했고, 국내 굴지의 대형병원은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선 애초 방역 관리조차 도외시했다. 300여 목숨이 쇳덩어리 뱃 속에서 차오르는 바닷물이 우걱대는 공포를 마주할 때, 고작 헬기 몇 대에 자그마한 함정 조금 보내고 바깥에서 "나오라" 확성기 외친 게 우리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초기에 인명 구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건, 고기 잡으러 나왔던 '어부'들이었다.

미국을 '우리나라'로 치환했다 치자. "정부 예산이 몇 천억, 아니 몇 조가 투입될 수 있는데 허무맹랑한 짓 아니냐"며 '생존 사실' 자체를 덮어버릴 수도 있을 게고, "저 돈으로 우주인 하나 살리느니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 도와라"며 본질을 흐리는 이들도 분명 생겨날 게다.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참, 암담하다.

온라인에서 수 년 전부터 미국더러 '천자의 나라'라며 '천조국'이라 떠받들고 칭송한다. 괜한 칭송이 아닌가보다. 이들의 독립선언서 전문을 살펴봐도 '인간 존중'의 정신이 흐른다. 전통에서 "사람을 귀히 여기는" 생각이 밑바탕이 된 게다. 엔딩을 수놓는 디스코 음악(마크는 "듣기 지긋하다"고 치를 떠는데, 뭐, 난 몸이 들썩거리는 게 딱 좋던데?) "I will survive"가 말하는 'survive'는 나만의 '생존'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합심한 '생존'이다. 그것인즉 '연대'다. 모두가 살아야, 내가 살아갈 의미가 있지. 그렇지요?

PS1. 영화 <마션>은 오늘날 세계의 변화된 상을 많이 반영해서 눈길이 간다.

NASA의 '마크 와트니 구출 프로젝트'를 잠자코 지켜보던 중국 국가항천국은 자신들의 최신 기술이 깃든 '태양신 로켓'을 기꺼이 여기에 써먹도록 허용한다. 이에 대한 답례로 후일 NASA의 '아레나5' 탐사선 발사 프로젝트에는 중국 출신 우주인도 참여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갈등과 경쟁을 하며 서로 온전히 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전략적 신뢰'는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국익과 실리를 취하는 미-중 양국의 외교 원칙 '증신석의(增信釋疑)'가 반영돼 있다. 미국과 중국 양국 모두 협력을 하며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대의 명분을 확보했다. 중국은 우주인 마크 와트니를 '미국인'이 아닌, '과학을 공부하는 연구인'으로 대한 것이 신의 한 수다.

우주 연구 인력으로 유색 인종(아시안, 아프리칸 등)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보급선을 발사할 로켓을 만드는 연구소 총책임자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잔존 대원들이 탄 '헤르메스호' 기수를 화성으로 돌려 마크가 탄 상승선과 도킹시키게 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낸 NASA 우주역학팀 소속 '리치 퍼넬'은 검은 피부의 사내다. 인종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고급 인재로 얼마든지 유색 인종이 활약하는 개방적인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 (그래도, 아직 미 유수의 사립대에서 아시안들이 입학 거부를 당하는 등 역차별을 받는 것을 보면...갈 길이 멀긴 허다. 흑인들을 대상으로 한 경찰들의 강경한 태도 역시 문제긴 하고...)

PS2.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맡은 배우들 면면을 살펴보니, 낯익은 배우가 많더라. '맷 데이먼'은 너무 많이 호명되니 논외로 하고...미드 <뉴스룸>에서 앵커로 활약하던 윌 맥어보이 양반(제프 다니엘스 분)이 NASA의 테디 국장으로 나올줄야...!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프랭크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기삿감 얻어먹던 조이 반스 기자(케이트 마라 분)는 대원으로 나오고! 소싯적 <007 골든아이>에서 제임스 본드에 대적하던 006 알렉(숀 빈 분)도 여기서 보다니! (근데 주름이 되게 많아졌다...너무 늙어버렸어...T.T) 여러모로 흥분에, 또 흥분이 이어졌다.


엔딩에 삽입된 "I will Survive"(Gloria Gaynor 노래) 유튜브 영상 하나 투척하고 물러간다. 아직도, 영화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아아. 화성으로 가버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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