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여름에 문화방송(MBC)에서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을 방영했다. 이준기와 남상미가 열연했는데, 이준기는 국정원 요원으로 일하며 태국·한국 등지를 거점으로 마약 판매를 하는 폭력조직에 들어가 프락치로 암약한다. 그러던 중 기억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국정원 요원이었단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만다. 드라마가 지배하는 시간적 분위기 또한 황혼이 드리우는 하늘이 자주 비친다. 아침 해가 뜰 새벽인지, 저녁이 다가오는 노을녘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 무렵 언덕에 비치는 동물이 내가 기르던 개인가, 나를 잡으러 오는 늑대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다.


아침 눈을 뜨자마자 조간신문을 들여다본다. 온갖 사건과 사고, 소식, 논평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중 '나의 기준'으로 미뤄 볼 때 '읽을 가치'가 있는 기사를 선별하는 작업은 중대사다. '과연 이 기사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기사도 있다. 하지만 매체의 명성 때문에 일단 믿기로 한다. 기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취재했을 지 100% 속단할 수 없으므로, 기댈 것은 이 매체가 얼마나 알려져 있고, 그간 매체의 이력에 오점을 남길 만한 오보가 있었는가 여부다. 언론은 요상하게도 터뜨릴 때는 샴페인 뚜껑 따듯 '펑' 터뜨리지만, 막상 오보가 나서 정정 보도를 할 때면 자그마한 한 구석에 눈에 보일까 말까한 활자 크기로 내보낸다. 마치 "누가 시켜서 우리는 '이 정도 선에서 보여주는 거야'"라고 외치는 것마냥.


"기자는 그저 눈에 보이는 사실(fact)을 쓸 뿐 진실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대중의 몫이다. 사람들이 보는 게 진실이지."라 말하는 보도국장(이미숙 분)의 한 마디가 영화의 주제의식을 꿰뚫는다. 이혼 도장 찍게 생긴 '위기의 남자' 허무혁 기자(조정석 분)는 방송사의 광고주의 비리 의혹을 캐서 보도했다가 잘리게 생겼다. 그런데 제보 전화 한 통을 받고 취재를 나갔더니 '왕건이' 하나를 잡았다. 서울 시민을 공포에 빠뜨린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단서를 발견한 것. 일순간 허무혁은 '스타 기자'로 등극하고, 온 나라가 허무혁을 주목한다. 그런데 그 제보는 '잘못된 제보'였다. (허위제보를 눈치 채는 바로 그 순간의 조정석 얼굴은 마치..."어떡하지 나?"라고 외치고 싶은데 마음 속으로 말을 되뇌는 그런...얼굴이다.)


하지만 사실에 대한 제대로 확인 없이 오로지 시청률, 구독률만을 위해 내보내는 언론사의 '경마 저널리즘'은 거짓도 진실로 둔갑시킨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정 작용을 시도하는 동시에 왜곡된 상황으로 끌고 들어간다. 언론의 보도를 접한 수용자들 중 일부는 경찰서 자유게시판에 연쇄살인사건이 마치 소설 <량첸살인기>와 흡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여기서 경찰이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언론사를 추궁하고, 허무혁 기자를 추궁하며 '사실을 제대로 확인'했어야 하나 끝내 소설 <량첸살인기>대로 살인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는 섣부른 단정을 하기에 이른다.


한편 진짜 살인범은 죽었는데, 가짜 살인범의 인터뷰 하나로 진짜 살인범이 가짜 살인범을 돕다 죽은 '용감한 시민'으로 둔갑하는 놀라운 풍경은 수용자들이 창조한 그림이다. 과거 연탄 봉사 활동에 참여한 사진 한 장은 살인범을 '용감한 시민'으로 확정짓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하나의 가치를 표상하는 증표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는 세태, 어쩌면 저널리즘의 단순화가 낳은 참사일지도 모르겠다. 'A가 왜 B가 될까, Z로 갈 여지는 없을까' 고민하기보단 'A는 B다. 이는 ~하기 때문이다.'는 단순한 도식만이 존재하는 언론들이 주를 이루기 있기에 그러하다.


수용자들은 미디어를 접하고 끊임없이 의견 표명을 하고 참여를 하겠지만 이 역시도 한계가 있다. 수용자들이 사건 면면을 들여다보기란 실상 어렵고, 들여다보더라도 주된 접촉 창구는 '언론'이다. 즉 언론의 생각을 빌려 수용자들이 자신의 말로 '변형'하여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언론에서 왜곡된 정보나 특정 가치에 편승하여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를 제공한다면, 수용자는 이를 '진실'로 받아들일 여지가 높다.


돌고 돌아, 여전히 언론이 중요하다. 사안을 해석하여 수용자들에게 정확히 판단할 근거를 제공하는 몫은 오롯이 기자의 몫이다. 수용자들이 일일이 사안을 해석하기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너무나 바쁘다. 정신 없다. 여유가 없다. 누군가는 대신 나서서 사안이 흘러온 연원과 가치, 앞으로 방향을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그래서 언론이 필요하다. 연례행사처럼 "언론이 위기"라고들 한다. 혹자는 "사양산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봤을 땐 그렇지 않다. 응당 언론이 해내야 할 임무는 막중하기에, 본연의 사명에 충실한다면 살 길은 있다. 마누라가 낳은 아이가 내 아이든 아니든, 내가 보는 것이 '진실'이라 믿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안내할 이는 '언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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