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중국 손아귀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박동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과거 미국 트루먼 행정부의 '마셜 플랜'과 견줄 만하다. 단순히 경제 협력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북한의 경제 재건을 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의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겠다는 의도가 내재돼 있다. 북한 정권도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경계심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고 판단된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서해안과 동해안, 비무장지대를 H자 형태로 동시 개발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는 곧 광범위한 노동력 교류와 교통·통신·전력 인프라 개선, 자원 공급을 꾀해 한반도를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 묶겠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주요 교역 대상국은 중국 일변도에서 남한 등으로 다변화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일국에 대한 의존성이 약화되면 북한으로서는 '국가이익 유지·확대'라는 대전제 아래 가질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이 한층 넓어진다.
기실 김정은 정권이 2013년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했던 배경에는 외교 행동의 자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 이래 미국이 중국과 전략경제대화를 개시하고, 2013년 취임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외교정책 기조를 '신형 대국관계'로 결정하면서 기존 패권국가인 미국과 신흥 강대국인 중국이 상호 존중을 꾀하며 공존하자는 의식이 한동안 진전된 것이 평양 정권의 사고를 전환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선대 김일성·김정일 시대만 하더라도 북한의 핵 개발은 외부의 공격 위협에서 벗어나 체제 존속을 보장받기 위한 협상 수단으로서 의의를 지녔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래 북한의 핵무력은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 안에서 독자 생존을 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가 강화됐다. 보유 성격이 짙어진 셈이다. 지정학적 위치·전통적 외교 관계·대외 교역 등을 근거로 숱한 이들이 "북한은 중국에 경도돼 있다"고 결론을 내리지만, 외교 액션의 측면에서 보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중국의 외교 액션에 오롯이 편승하지 않은 채 핵무력과 미-중관계의 변동성을 활용해 끊임없이 체제 안전 보장을 달성하려는 시도를 꾀하고 있다.
▲2018년 4월27일(금)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 : 서울방송·SBS)
북한이 중국의 요구에 마냥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은 이미 올 초 드러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줄곧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을 골자로 한 '쌍중단'을 북핵 해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북한은 올해 훈련의 진행을 용인했다. 김정은이 "이해한다"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아울러 비핵화에 따른 체제 안전 보장 조치로 '주한미군 철수'를 내세우지 않은 점도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으로 확인됐다. 주한미군이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극단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김정은 정권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3일 중국 외교부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을 찾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건넨 발언을 공개했다. "북한은 (…)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을 탐구하고 토론하길 원한다." 중국은 상대 국가 최고 권력자의 발언을 신속하게 외부로 알렸다. 이는 중국의 관심사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 제거'에 있다는 점을 내포한다. 즉, 자국의 국가이익을 침해하는 주한미군·사드 등의 철수 논의가 북한의 비핵화 논의와 병행돼야 함을 강조하는 게 속내에 깃들어 있다.
남한 입장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중국이 개입하는 것은 국가이익에 현저히 저해된다. 중국이 선제적으로 경제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의 비핵화 의지가 선언됐다면, 사실상 비핵화 작업에 관여하는 주체는 중국과 미국 양자가 됐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핵 협상은 미국과 중국의 양자 협상으로 전이돼 중국이 고대하던 '주한미군 철수'를 강력하게 관철시킬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거세된 한반도는 중국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인 바, 이는 남한 당국자 처지에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19세기 말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은 <조선책략>이라는 저서를 통해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을 내세워 국력이 팽창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일본·미국을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작금의 상황은 다르다. 남한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을 활용하고, 북한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을 타면서 영점을 벗어나 한쪽으로 경도되지 않고자 남한을 활용하는 것. 한반도에서 중국의 지분을 최대한 줄이는 게 향후 한국 외교 당국자들의 주된 정책 과제이며,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에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자리잡고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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