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조현병'과 '중졸'의 굴레… "계속 살자니 토할 것 같아요"
[벼랑끝 청년빈곤 ②] 월 100만 원 벌며 가족까지 부양해야 하는 심경환씨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 많으니까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 나눠 보세요." 한 청년이 인터뷰 내내 되풀이한 말이다. 새로운 사회의 출발선에 발을 내디딘 지금, 우리 청년세대의 절망은 짙고 깊은 골짜기에 있다. '88만원 세대'는 어느새 '77만원 세대'로 전락했다. 중산층 붕괴의 소용돌이에서 부모의 가난이 자식에게로 전이된다.
가중되는 취업난의 복판에서 청년들은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고, 그나마도 '하루살이 인생'인 단순노무직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청년들이 숨 쉴 틈이 있어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고, 건강한 사회로 가는 길을 개척할 수 있다. 동시대를 사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쓰기로 했다. 문제 해결을 모색하려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 기자 말
▲청년들은 지금 절망하고 있다 ⓒ pixabay
부산 동구의 한 문화시설에서 일하는 심경환(가명·29·부산 범일동)씨는 종일 안내데스크에서 죽쳤다.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이라는 명목을 내건 구청은 그에게 '시설물 관리'와 '경비' 업무를 맡겼다.
경환씨는 일주일에 나흘 그곳으로 출근한다. 한 달 100만 원을 버는 청년구직자다. 지난 연말에는 평일 내내 구청에 나가 업무 서류를 정리했다. 그간 숱하게 많은 일터를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편의점 계산원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하루 만에 점주는 "나가라"고 면박을 줬다. 일하는 게 시원찮았나 보다. 최근엔 유명 가구 업체에서 대리점 판매직을 뽑는다기에 지원서를 넣었다. 면접을 보고 사전 교육까지 받았다. 합격하나 싶었다. 결국 그는 낙방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정신적인 상처까지...
초등학생 시절부터 어리숙해 보이고 만만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은 그를 무시했다. 학년이 오를수록 급우들의 따돌림이 할퀸 생채기는 켜켜이 쌓였다. '찐따'라는 가시 돋친 말이 에워쌌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두려웠다. 경환씨는 결국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먹고 살기 급급한 가정 형편 때문에 심연에서 올라오는 상처에 연고를 바를 적기를 놓쳤다. '조현병(정신분열증)'과 '망상증'이 덮쳤다. 바깥을 나가는 경환씨의 눈에는 모두가 자신더러 "못났다"며 수군대는 사람들 투성이였다. 외출하기가 무서웠다. 점점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무기력한 일상이었다.
약을 먹었다 끊었다를 반복했다. 4년 전부터에서야 비로소 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끼니마다 세 종류의 알약을 먹는다. 나른하지도, 졸리지도 않는다. 약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기분이 못내 찜찜하다.
▲청년빈곤에 따른 고통을 겪는 심경환씨 ⓒ 박동우
경환씨는 "지금 받는 월급이 150만 원으로 오르면 좋겠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현재 100만 원의 벌이에 포함된 식비는 한 끼의 가격을 3000원으로 매긴다. 편의점 도시락이 4000원에 육박하고, 돼지국밥 한 그릇이 6000원을 넘긴 마당에 이 정도 식비는 짜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싸온 밥과 컵라면으로 식사를 때우기 일쑤다.
어둠을 지나면 과연 신새벽이 올까. 가족은 올해가 돼서야 판잣집 신세를 벗어났다. 슬레이트 지붕과 콘크리트 벽돌을 두른, 번듯한 단독주택이다. 50㎡(15평) 남짓 되는 면적의 집은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을 내고 살고 있다.
경환씨는 창고를 자기 공간으로 쓰던 과거와 달리 제대로 된 '내 방'을 얻어서 기쁘다. 간이용이긴 하지만, '가족만의 화장실'이 생긴 점도 만족스러웠다. 예전 살던 집엔 화장실이 없었다. 집을 나와 공중변소에 가야 했다. 대변이 마려울 땐 쓰레기통에 비닐을 깐 채 볼일을 봤다.
경환씨 가족은 경기도 부천을 떠나 2003년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가 사는 범일동엔 6·25전쟁 당시 피란민이 몰렸다. '조국 근대화'를 외치던 시절엔 노동자들이 모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부산에서 주거환경이 열악하기로 손에 꼽히는 동네가 됐다. 세간 사람들은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 불렀다. 도심 속 무인도. 밤만 되면 사방이 고요하다. 별안간 부부싸움이 나서 유리창이 깨지고 경찰이 오가면 그나마 사람이 사는 동네라는 게 실감 났다.
간절한 소망, '자립'
▲지난 22일 심경환씨가 사는 부산 동구 범일동의 모습. 슬레이트 지붕을 머리에 인 단층주택들이 즐비한 가운데, 너머엔 대기업 브랜드의 중산층 아파트 단지가 한눈에 들어와 대조를 이룬다. 세간 사람들은 범일동을‘시간이 멈춘 마을’이라 불렀다. ⓒ 심경환
가난의 파도는 경환씨의 집에도 밀려들었다. 네 식구인 가족의 한 달 수입은 경환씨 월급에,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여동생이 벌어오는 돈 130만 원을 더해 230만 원에 불과하다. 내일모레면 칠순을 앞둔 경환씨 아버지는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지만, 나이 탓에 통 일감 구하는 게 벅차다. 어머니는 시각장애 1급이다. 2004년 한쪽 눈이 갑자기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병원을 전전했다.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끝내 시력을 잃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반대편 눈으로도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생계가 어려워지자 부모님은 급한 대로 신용카드를 통해 대출을 받아 버텼다. 600만 원의 빚이 생겼다. 10년째 밀린 빚만큼 회사의 독촉도 끈덕지다. 사설 대부업자들도 줄기차게 이들을 잡고 늘어졌다. 공과금, 통신비, 식료품비, 약값을 내다 통장이 바닥나자, 사채에 손을 뻗은 게 화근이었다.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는 전화 공세에 시달렸다.
빚은 가파르게 불어나는데 소득은 턱없이 적었다. 전기료·수도료·통신요금 고지서를 두고 벌벌 떨었다. 어떻게든 아껴야 했다. 그런데 요새 어머니의 몸이 부쩍 여위었다. 영양실조가 의심된다. 부모님의 병치레는 금전적 부담을 동반한다. 경환씨는 가족을 부양하면서 예기치 않게 돈이 빠져나가는 상황이 두렵다.
나아질 듯하면서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 발버둥 치는데 서 있는 자리는 그대로다. 그는 장차 캠퍼스 강단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다. 오랜 소망이다. 하지만 중졸이다. 아직 검정고시를 치르지 않았다.
"최소한 고졸이라도 맞춰야 하죠. 가방끈이 짧아서 하루빨리 늘려야 돼요."
경환씨의 마음 한 구석엔 '자립'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자리 잡았다.
"여기서 계속 살려니 토할 것 같아요. 늦어도 내년까지 종잣돈을 모으고, 2년 뒤에는 완전히 나가야겠단 생각을 하는데, 그게 생각대로 될지 모르겠습니다."
박동우 기자 pdwp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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