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안철수 지지하던 그 많던 청년들은 어디로 갔을까?
[5.9 대선은 '세대 전쟁' ③] 2030 지지율 추락한 안철수... '새 정치 구호'에 염증 느껴
"청년들이 왜 자신을 원하는지, 청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안철수 후보는 그냥 청년들이 자기를 좋아해 주니까, 대학교에 가서 얼굴만 비치면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네요." - 최영지(가명·26·회사원)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떼를 쓰는 느낌이 있어요. 좋은 교육도 받으셨고 생활도 나쁘지 않을 텐데, 왜 유치하게 언쟁을 펼치죠? 말을 하면 할수록 확 깨는 느낌을 받았어요." - 박예림(가명·27·대학원생)
젊은이들이 안철수에게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그래서 그는 손을 내밀었다. 지난 4월 26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는 청년정책을 발표했다. 청년기본법을 제정하는 한편, 취업준비생 40만 명을 대상으로 6개월에 걸쳐 30만 원씩 지원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시큰둥한 눈치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지난달 28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국민대통합과 협치에 관한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한국갤럽은 4월 25~27일 전국 성인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대선 후보 지지도'를 조사했다. 20대에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44%,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16%의 지지를 받았다. 불과 '1%p' 차이로 정의당 심상정 후보(15%)가 안 후보를 바짝 쫓고 있었다. 30대 역시 안 후보(21%)보다 문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55%)이 두 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일주일 전 여론조사와 견줘 보더라도 별반 차이는 없다. 현재 청춘의 표심은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때 2030세대는 안철수의 말 한마디에 열광했다. 2011년 5월 22일 서울시 회기동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청춘콘서트'가 열렸다. "4천 석이 몇 초 안에 매진됐다"(<프레시안>, 2011년 9월9일)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말마따나, 젊음의 파도로 넘실댔다. 당시 <미디어스> 김민하 기자는 그해 펴낸 저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를 통해 "안철수가 20대에게 받는 지지는 노무현 때보다 훨씬 압도적"이라 평가했다.
6년이 지난 지금, 청년들의 목소리는 매섭다. 여기저기서 안 후보를 둘러싼 실망과 분노를 표출했다. 대선은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청년들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고 치유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는 안 후보. 과연 청년들의 마음을 얼마나 돌릴 수 있을까. 한때는 안 후보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밝힌 청년 5명을 인터뷰했다.
"구체적 내용 없이 '내가 하면 다 새 정치'인가?"
▲2030세대 문재인·안철수·심상정 지지율. 한국갤럽 주간 여론조사 자료를 재가공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관위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박동우
그가 몸담고 있는 국민의당을 둘러싼 의구심 섞인 눈초리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 사는 양인걸(가명·26·대학생)씨는 "안철수 후보 뒤에서 박지원 대표가 흔들고 있는 것 같다"며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데 안철수 후보는 대북정책에 관해 자꾸 당의 눈치를 보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경북 경산 진량읍에 사는 하은주(가명·23·대학생)씨의 의견도 비슷했다. "민주당 안에 있다가 공천 못 받을 것 같으니까 같이 따라 나간 사람들과 무슨 '새 정치'의 비전을 구현하겠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그저 '내가 하면 다 새 정치'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국민의당 의석수가 40석에 불과한 점을 꼬집으며 국정 운영이 원활히 돌아갈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박예림씨는 "국민의당은 힘이 없어 보인다"며 "당 차원에서 정책을 만들고, 실제 추진할 능력이 있는 정당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재인에게 '갑철수' 따진 안철수, 투정 부리는 아들 같아"
최근 몇 차례 있었던 TV토론은 여론조사에서 35%를 상회하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을 단숨에 무너뜨린 결정적인 계기로 추측된다. 청년들은 TV토론에 대해 "안 후보에게 그나마 갖고 있던 호감도 완전히 지웠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특히 지난 4월 23일 방송된 토론에서 안 후보는 스스로를 'MB아바타' '갑철수'로 지칭하며 문 후보를 몰아붙였다. 생뚱맞은 공세를 생중계로 접한 이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오정민(가명·27·미술관 해설사)씨는 안 후보가 '문재인의 아들' 같다며 혼자 실소를 머금었다. "지금 토론을 보더라도 안철수가 문재인을 상대로 너무 과하게 공격하는데, 마치 투정 부리는 것처럼 보여요. 사춘기를 겪는 아들이랄까요." 최영지씨는 "본인이 네거티브를 하지 말자고 했으면서 정작 본인이 네거티브를 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왜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안 후보는 자신이 맞닥뜨린 의혹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아내 김미경 서울대 교수가 의원실 보좌진을 상대로 사적 업무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청년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대기업 회장의 비서업무를 했다고 밝힌 박예림씨는 "국회의원을 대신해서 말을 전달하는 이들이 보좌진인데, 4년 동안 (보좌진이) 25명이나 거쳐 갔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직원 처우에 있어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전화 인터뷰에 응한 청년 5인이 밝힌 '안철수 지지를 철회한 이유' (1) ⓒ 박동우
▲전화 인터뷰에 응한 청년 5인이 밝힌 '안철수 지지를 철회한 이유' (2) ⓒ 박동우
"국회의원 재·보선 당선 뒤 2030 지지율 확 빠져"... 왜?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청년들이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를 회수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3년 국회의원 재·보선에 나가서 당선된 다음부터 2030세대의 지지율이 확 빠졌다"고 말했다.
그 시점엔 '안철수 현상'이 '안철수 없는 안철수 현상'으로 판명됐다. 당시 안철수는 설득력 있는 대안이나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새 정치'만 부르짖었다. "유행에 민감한" 2030세대가 염증을 느끼는 건 필연이었다는 얘기다.
2012년 대선을 떠올린 오정민씨는 국회의원 정수를 축소하자는 주장을 예로 들었다.
"국회의원 수를 100명 줄이면 예산 절감효과가 2천억~4천억 원 있다는 말을 했던데, 어떻게 보면 대의민주주의에 위배되는 과한 주장이자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니라 국회의원 자체가 갖고 있던 권한을 줄이고 특혜를 제한하는 방향이 맞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일찌감치 지지를 거둔 청년들이 이제 와서 TV토론이나 각종 의혹 등을 지지 철회의 이유로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그 배경엔 일종의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확증편향'은 과거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의 경향을 뜻한다.
이준한 교수는 "'TV토론을 보니 자질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것 같더라'는 서술은 오래 전부터 청년들 스스로 품고 있던 생각이 발현된 것"이라며 "'역시 안철수에 대한 내 평가가 틀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자기 믿음을 더욱 굳히게 된 상황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힐링캠프> 때 반해 5년 지켜봤는데... 남는 건 실망 뿐"
▲안철수 후보는 2011년 9월 당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당선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 유성호
최영지씨는 무릇 대통령을 뽑는다면 후보의 인품이나 철학을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2012년 안철수는 서울방송(SBS)에서 방영된 <힐링캠프>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리에서 "내가 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안철수에게 반했다. 자기 생각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언제든지 갖고 있어야 한다는 안철수의 주장은 신선했다. 말을 내뱉은 대로 밀어붙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 철학'에 환멸을 느끼던 차였다.
앞서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한 점 또한 인상 깊었다. 최씨는 "본인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대의에 입각한 판단을 내린" 안철수의 행보를 매우 높게 샀다.
박근혜 정부 들어 줄곧 안철수가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눈여겨봤다. 남는 것은 후회였다.
"저도 사회초년생이니까 헤매는 것처럼, 이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선 지 얼마 안됐으니까 많이 기다려줬어요. 그런데 이미 5년이 넘게 지났고, 이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니까 더 실망이 큰 거예요."
4월 27일 안철수 후보는 "동성애는 찬성 또는 반대, 허용 또는 불허 사안이 아니"라며 "동성결혼 합법화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권의식이 비교적 부족한 측면도 진보적인 최씨에게는 실망감을 더해주는 일이었다.
지난 대선에서의 문재인 동정 여론 확산
안철수 후보를 겨냥한 반감의 이면에는 문재인을 향한 동정의 정서와 2012년 정권교체 좌절에 따른 원망도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는 후보 사퇴를 통한 단일화 후 13일 만에 본격적인 지원 유세에 나섰다. '안개 행보', '소극적 지지' 등의 비판이 잇따랐다. 그는 선거 당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문 후보는 패배했다.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선 "이길 수 있는 선거에 재를 뿌렸다"며 안철수를 책망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즈음 오정민씨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저건 안철수가 삐쳐서 도망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단다. 오씨는 "분명히 문재인 후보를 밀어주면서 본인 입으로 '모든 잘못은 제게 다 주시고 문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며 "끝까지 아름답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도망간 것처럼 보였다"고 혀를 찼다. 이런 논란에 대해 안철수 후보 측은 "사퇴 후 문 후보 측 도움 요청이 없었다. 도움 요청이 들어온 후엔 성의껏 지원 유세를 했다"며 "(미국행은) 선거 끝난 뒤 논공행상 문제가 있을 텐데 나가 있어야 문 후보가 부담을 갖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안 후보 측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가 문재인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2030세대가 대거 떠난(1차 이탈) 뒤, 2015~2016년 안철수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과 국민의당 창당이 또 한 번 2030세대의 지지 철회(2차 이탈)를 불러왔다고 진단한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재인에게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약자라고 믿는 주체에 지지세가 몰리는 현상)'가 발생했다. 안철수의 횡포, 문재인의 의리·고난이 대비되면서 2030세대가 문재인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안철수의 선거운동, 자기 장점 없애고 있어"
엄경영 소장은 안 후보의 선거운동이 자기 장점을 없애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원 상왕론'이 계속 제기되면 선대위에서 배제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며 "심지어는 당장 눈앞의 보수층을 보고 기득권, 소위 '적폐 세력'과도 야합하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엄 소장은 "탄핵 정국에서 비롯된 이번 대선은 2030세대가 중심에 서서 야권 후보를 결정한 가운데, 호남이 부수적으로 후보 지지를 확산시킨 양상"이었다며 "포스터, SNS, 로고송 등 기술적인 해법으로만 접근한다면 청년들의 지지를 다시 회복하긴 어려울 것"이라 내다봤다.
박동우 기자 pdwp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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