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말하고 내일을 쓰는 사람”

박동우(朴桐佑)입니다





□ 생년월일 : 1992. 11. 9

□ 본    적 : 울산광역시

□ 학    력

○ 울산 대현고 졸업(‘11년 2월 11일)

○ 국민대학교 경제학과 입학(‘11년~)


□ 주요경력

○ 국민경제포럼 학회원

○ 민주당 제10차 대학생정책자문단 교육2팀 부팀장

○ 국민대신문사 사회부 기자

○ 민주통합당 제12차 대학생정책자문단 부단장

국민저널(국민대학교 독립언론사) 취재부장

○ 한겨레신문사 편집국 편집관리팀 아르바이트 사원

○ 국회 추미애 의원실 입법보조원

○ 울산광역시교육청(울산행복학교) 사회복무요원

○ 국회 권칠승 의원실 인턴비서


□ 수상 관련 사항

○ 민주당 제10차 정책자문단 교육2팀 / 발표 정책 보고서「진로누리교육과정편성안 - 생활중심진로교육」은상

○ 국민경제포럼 / 국민대 경상대학 학술제 발표 논문「빈민 자립의 희망, 마이크로크레디트」최우수상

○ 국민저널 / 제4회 시사iN 대학기자상 특별상

○ 박동우 / 제5회 시사iN 대학기자상 학내보도취재부문「예술대 지 아무개 교수 비리 추적 연속 보도」

○ 박동우 / 울산광역시교육청 주최 2014년 올해의 책 독후감 공모전 성인부문 최우수상

○ 박동우 / 새정치민주연합 2.8전국대의원대회 슬로건 공모전 우수상

○ 박동우 /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백보드 쓴소리 공모전 문구 선정

○ 박동우 / 민주연구원 주최 더불어 정책컨테스트 공모 아이디어 「결손가정 청소년 자립통장 - (가칭)새싹희망통장」 가작


□ 언론 출연 관련 사항

○ “소득 하위10%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 <한국대학신문>, ‘12년 11월 1일

○ 학교 아닌 학생 위한 언론들, <한겨레21> 935호, ‘12년 11월 8일

○ “대학언론의 상황 가슴이 아팠다”, <시사인> 284호, ‘13년 2월 15일

○ <시사IN> 대학기자상, ‘절박함을 쓰다’, <시사인> 284호, ‘13년 2월 15일

○ 학교 아닌 학생 위한 언론을 꿈꾼다, <시립대신문> 644호, ‘13년 3월 4일

○ <신문의날특집>벼랑끝대학언론,내일은있는가,<동아대학보>1102호,‘13년4월2일

○ “대학 자치권 침해 대학자치 토론회 개최”, <제주환경일보>, ‘13년 4월 11일

○ 위기의 대학언론, ‘협동조합’으로 활로 모색, <뉴스1>, ‘13년 4월 11일

○ 팟캐스트·학보도 감시…도넘은 대학 언론통제, <한겨레>, ‘13년 4월 12일

○ 흔들리는 대학 언론, <KBS 한국방송> 미디어 인사이드, ‘13년 4월 14일

○ 대학자치언론, 어려움 속에 피어나는 ‘언론心’, <부대신문>1461호, ‘13년4월15일

○ <국민저널> 필요없는 국민대를 원한다, <캠퍼스위크>, ‘13년 4월 16일

 [캠퍼스리포트]‘대학생자치언론시대’열리나,<KTV정책방송>뉴스,‘13년5월31일

○ <집중취재> 대학가는 지금 ‘소통 전쟁’ 중, <EBS교육방송> 뉴스, ‘13년 6월14일

○ <집중취재> 이유 있는 ‘불통’…대책은 없나, <EBS교육방송> 뉴스, ‘13년 6월14일

○ 학교그림자속학보사“이제독립하게해주세요”<카이스트신문>378호,‘13년6월21일

○ ‘예술대 지 아무개 교수 비리 추적 연속 보도’, <시사인> 330호, ‘14년 1월 15일

○ 젊은 시선과 열정으로 어떻게 차별화했나, <시사인> 330호, ‘14년 1월 15일

○ “학교에 좋은 기사 넣어라”...대학언론 편집권 ‘진통’, <오마이뉴스>, ‘14년9월5일

○ 대학언론의 정론직필이 흔들리다, <연세춘추>, ‘17년3월26일


□ 기타 특이사항

○ 국회사무처 주관 대학(원)생 의회아카데미과정 수료

○ 민주당 제10차 대학생정책자문단 교육과정 수료

○ 교수신문사 주관 제12기 전국대학언론기자학교 심화과정 수료

○ 사단법인 민주언론시민연합 주관 제79기 언론학교 교육과정 수료

○ 재단법인 녹산학술장학재단 및 바른사회밝은정치시민연합 공동주최 2012년도 대학생 민주시민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 4.19민주혁명 장학생 선정

○ 국민저널 주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대학생언론인과의 타운홀미팅 기획

○ 전국대학언론인 주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인터뷰 기획

○ 장하나의원실·반값등록금실현과교육공공성강화를위한국민본부·대학언론협동조합 준비위원회 공동주최 <대학의 자치권 침해와 대학자치의 필요성> 토론회 / 「국민저널 창간 히스토리 및 국민대학교 학생자치권 침해 사례」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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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물건]너는 나의 즐거움이었다

아남전자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 AV-500



▲아남전자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 AV-500. 1997년 7월 4일 세상에 나왔다.


아남전자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 AV-500,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게 편지를 쓴다. 그간 어두칙칙한 옷장에서 답답하지 않았니? 옷가지로 가득 차서, 정리를 해야 하는데 마침 네가 눈에 띄더라. 디지털카메라와 컴퓨터가 보편화된 2000년대부터 난 널 쓸 일이 없었어. 그러다 어느 순간 옷장 너른 구석으로 직행했지.


가로 40cm, 세로 34.5cm에 키는 8cm. 톡톡 두드리면 둔탁한 철판 소리가 나는 게 어릴 적 내게 위압감을 줬지. 정가는 34만원인데, 공장출고가는 약 27만원. 요새 온라인몰에 나오는 제품들 보면 3~4만원 안되는 가격에 팔더라. 하긴, DVD 나온 세상에 비디오 찾을 양반들이 어디 있을까. 격세지감이다.


혹시나 비디오 넣다가 손을 찧지는 않을까 싶어 무척이나 조심했는데, 커서 보니 아무 것도 아니더라고. 그냥 단칼에 밀어넣으면 그만이었는데 말이지. 네가 97년 7월 4일생이니 낭랑 열여덟이구나. 풍요 속의 빈곤이라던, 90년대 시절 용 써서 알록달록한 영상들 보여주느라 고생 많았어.


지난날을 돌이키면, 너는 나의 어린 시절과 동고동락했어. 빨간 빤쓰 입고 이리저리 정글을 헤집던 소년 모글리를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둘리와 함께 알파벳 나라로 여행도 다녔지. 음, 또 뭐가 있었더라? 예능과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던 김지호 누나가 동요도 불렀어. 두 눈에 별이 반짝이며 뿅 갔단다. 홍길동 복장을 한 초롱이랑 세종대왕님의 삶을 들여다보던 기억도 나네. 이상우가 부르던 주제가가 워낙 시원시원해서 여러 번 앞부분만 돌려 보기도 했는데.


비디오 안전탭을 열면 홈이 나와. 여기다 휴지를 돌돌 말아서 끼워넣으면 공테이프로 얼마든지 쓸 수 있었지. 그래서 만화 본편이 나오기 전에 광고가 나오잖아? 그 대신 만화 주제가를 집어넣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했지. 아빠한테 손으로 툭툭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키며 "이거, 이거" 하면 버튼을 쓱싹 만지더니 녹화가 되더라. 되게 신기했어. 덕분에 슈라토, 리리카, 레츠고형제...많이도 찍었네!


너를 길러낸 아남전자는 외환위기 때 휘청거렸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던데, 20년 흐른 지금까지 명맥만 이어가는구나. 적자 규모도 갈수록 늘어나 지난 해엔 80억원이나 손실을 봤대. 부디 따뜻한 볕을 봤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질곡의 세월을 버티고 있음에 고마워. 모진 풍파를 견디고, 시대의 기억이 온전히 이어지니 말야.


두 눈 바로 뜨고 지긋이 너를 지켜 본 게 이번이 처음이야. 네 몸을 이루는 금속 중에도 구리, 은처럼 다시 쓸 수 있는 재료들이 많대. 10여 년 동안 쉬고 있었으니, 이젠 구청에 가서 귀한 쓰임새를 찾길 바랄게. 덕지덕지 먼지 내려앉은 시절도 오늘로 종언을 고했다. 새 삶을 찾아 떠나렴. 안녕.



▲추억의 네 자리 지역국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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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 일본 총리와 '맞짱' 뜨는 YS. 문득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던 YS의 사자후가 떠오른다.

출처 : <뿌리의 이글루스> 블로그

http://egloos.zum.com/jampuri/v/4028231


학교 도서관 책장을 찬찬히 살펴보다, 멈춰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면에 <YS는 못말려>란 책이 있었다. (그가 퇴임한 뒤인 1999년, 2000년의 일이다.) YS 할아버지와 함께 책 속에서 퀴즈도 풀고, 미로 탐험도 했다. 내가 알던, 군림하고 강고한 대통령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스꽝스런 가분수 머리. 눈은 항상 감은 채 코는 겁나 큰 할배였다.


그는 어릴 적 나에겐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으리으리한 청기와집에서 칼국수를 즐겨 먹는다는 얘기가 그랬다. "거제를 '관광의 도시'로 만들겠심니더!"를 발음 한끝 차이로 금기의 단어로 둔갑시켰다는 일화가 구전처럼 떠돌던 것도 그 시절이었다.


고모부는 내가 "대통령 될거에요!" 말하면 "박정희 장군처럼 니도 혁명 함 해봐라!"고 호탕하게 외치던 기억이 있었다. 대통령은 당연히 혁명을 일으켜야 집권하고,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꼭 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투표를 해서 뽑혀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통령이 있었다니!


대통령을 갖고 유머를 만들어내도 누가 해코지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세상이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당신은 내 어릴 적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지요. 고마워요. 우리의 대통령.


金泳三

1927. 12. 20 ~ 2015.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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