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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방의 뉴스가게/잡탕방담

공포에서 해방되려면, '대면할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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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건물에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산다. 중국, 러시아, 몽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다양하다. 마주 칠 때면, 무언이다. 서로를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만큼, 그들도 나와 눈빛이 마주 치면, 움찔하거나 힐끔 쳐다본다.


기실 나와 다른 외양, 특질을 지닌 존재에 대해 인간이 품는 공포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이다. 이것은 안전을 갈망하고 외부의 위험 요소로부터 나를 지켜 생존을 도모하고자 하는 욕구가 인간의 DNA에 각인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양한 대상과 공존을 꾀하고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본질적으로 모든 대상은 같지만 다르다. 교류, 자원의 배분 과정에서 나와 다른 존재를 배제하는 순간, 갈등이 생기는 것은 필연이다.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재현되는 게다.


타고난 성정이 진보적 정신과 어울리는 것도 아닌지라, 내가 우리 건물 이방인들과 말을 섞은 건, 여지껏 단 두 차례다. 한번은, 가스식 의류건조기 조작이 미숙해 발 동동 구르던 중국인을 도와준 것. 다른 하나는 공동 휴게실에 갔다가 왠 몽골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있기에 "몇 살이냐" "참 똘똘한 어린이 같다"며 덕담을 건넨 것뿐. 다가서자, 서로 품던 경계심은 풀리고, 그 자리엔 환한 미소가 오갔다.


비대면에서 불신과 의심이 싹트고, 그렇게 저마다의 마음은 불안을 꽉 움켜쥔다. 미-중 '핑퐁 외교' 덕분에, 비로소 매스컴을 통해 중국 사람들을 접한 상당수 미국인들은 깜짝 놀랐다. 무자비하고 잔혹한 공산주의자, 악한 도깨비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었던 것을. 우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더디더라도, 조금씩, 묻고, 말을 걸고, 기꺼이 돕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당장 강제할 계제는 못 된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행동이 반듯하겠나. 하지만, 우리에게는 '대면할 용기'가 필요하다. 공포에서 해방되려면. 깊숙한 동굴에서 나는 음성이 나를 해치려는 맹수의 발자국 소리인지, 뚝뚝 떨어지는 이슬 소리인지 분간하려면 횃불 밝히고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그렇잖으면 영영 고통에 겨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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