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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국제]한국 찾은 일본인들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 소녀상 세워야"(17.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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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국제]한국 찾은 일본인들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 소녀상 세워야"

매년 5월 수요집회 찾는 '헌법9조 세계로 미래로 연락회' 사람들 "일본 정부, 성실하게 사죄해야"


볕이 쨍쨍했다. 집회 현장 위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늘을 선사할 구름은 없었다. 스즈키 유코(35, 경기 부천)의 두 볼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일행 중 다른 이는 회색 외투를 머리에 둘렀다. 건너편엔 경찰버스 넉 대가 줄지어 서 있다. 은박으로 감싼 배기관이 도로에 드리웠다. 시동을 켠 버스에서 휘발유 타는 냄새가 풍겼다. 코를 찔렀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땡볕도 마다않고 두 시간 가까이 자리를 지켰다. 24일 낮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에서 집회가 열렸다. 제1284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였다. 200여 명 넘는 참가자들이 '공식사과 법적배상' 구호가 적힌 노란 손팻말을 들었다.


스즈키씨 일행 가운데 대여섯 명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질서유지선 앞에 도열했다. 하얀 현수막을 펼쳤다. 현수막엔 분홍 나비, 보랏빛 나비가 넘실댔다. 우리말과 일본어로 된 글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일 '합의'는 해결이 아니다. 우리들은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 걷는 할머니들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양노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사무처장은 이들이 '헌법 9조 세계로 미래로 연락회(약칭 '9조련')' 회원들이라 귀띔해 줬다. 지난해엔 수요집회를 주관하기도 했단다. '전쟁 포기'를 못박은 일본 헌법 9조를 지키는 이들이었다. 반전(反戰) 운동과 평화 사상을 추구하는 일본 시민들이 모여 이룬 단체였다.


'부천댁' 스즈키 유코, 학창시절 옥선 할매 사연 접하고...


▲기세 게이코 9조련 사무국장(맨 왼쪽)과 스즈키 유코(맨 오른쪽) 등 '헌법9조 세계로 미래로 연락회(약칭 '9조련')' 회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현장에서 흰 현수막을 들고 있다. 현수막엔 "한일 ‘합의’는 해결이 아니다. 우리들은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 걷는 할머니들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는 글귀가 우리말과 일본어로 쓰여 있다. ⓒ 박동우



열다섯 명의 일행이 수요집회 전날 입국했다. 회원들과 7년 전부터 알고 지낸 스즈키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길동무를 자청했다. 이들이 서울에서 일정을 보내는 동안 행선지 안내를 하고 통역에 나섰다.


그는 가나가와 현 북동부에 자리잡은 대도시 가와사키 출신이다. 학창시절 부천시와 가와사키시 사이 양국 고교생 교류 모임 '하나(HANA)'에 몸담았다. 여기서 한국인 남자친구를 만났다. 8년 가까이 사귄 끝에 2015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스즈키씨는 우리말 발음이 어눌하지만 어휘력은 보통 외국인들보단 풍부하다. 그럼에도 "더 배워야겠다"며 한국어학당을 다니고 있다.


고교생 모임에선 이따금 역사 탐방을 떠나기도 했다. 어느 날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자신이 겪은 세월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이옥선 할머니는 이역만리에서 3년을 보냈다. 열다섯 나이에 군인 손에 붙들려 중국 옌지로 끌려갔다. '위안소'라 부르는 곳에 갇혀 날마다 벌거벗은 몸뚱이를 상대했다. 관리인은 피임을 도와준다는 구실로 '위안부'들에게 수은을 먹였다. 심지어 일본군은 소녀들을 비행장 활주로 닦는 공사에 동원하기도 했다. 할머니의 말씀 토막마다 충격으로 다가왔다. 가슴이 먹먹할 뿐이었다. 


"일본인과 한국인, 재일코리안들이 동아시아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역사 문제를 부인할 수 없어요. 오히려 이를 드러내놓고 같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스즈키씨는 그날 이후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쏟게 됐다. 회원들은 2006년부터 매년 5월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현장을 찾는다. 이에 대해 스즈키씨는 "일본의 헌법이 시행된 때가 1947년 5월이다. 이달에 맞춰 여기에 와서 '우리는 평화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알리는 한편 한국 시민들과 같이 연대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차원"이라 밝혔다.


"할머니가 원하는 건 '평화'...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 소녀상 세워야"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84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 참가자들이 소녀상을 에워싼 채 인도에 앉아 있다. ⓒ 박동우



작고 깡마른 몸집의 여인이 집회 현장 앞뒤를 바삐 오갔다. 그는 연방 스마트폰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9조련 사무국장 기세 게이코(65,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였다.


기세 게이코 사무국장은 '위안부' 피해를 겪은 할머니들을 두루 만났다. 박옥선 할머니, 이옥선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 등 여럿이다. 지난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강일출 할머니를 만나 우애를 다진 경험도 있다. 기세씨는 이른바 '평화헌법'을 수호하는 책무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과 맞물려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 


"할머니들은 자신이 당한 힘든 경험을 앞으로는 누구라도 겪지 않도록 하기를 원합니다. 할머니들이 원하는 건 '평화'예요. 전쟁이 '위안부 문제'를 빚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시선은 싸늘하다. 지난 연말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지자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이 나서 "유감"을 표했다. 올 2월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기자회견 자리에서 "지금까지 '위안부의 소녀상'이란 표현을 해왔지만, '위안부상'이라고 얘기하는 게 알기 쉬운 게 아니냐"며 딴지를 놨다. 이를 두고 "말도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인 기세씨는 "오히려 소녀상을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 세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일본 언론, '위안부' 피해자 배후조종 단체로 정대협 지목"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84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 참가자들이 소녀상을 에워싼 채 인도에 앉아 있다. ⓒ 박동우



방한단장으로서 자리를 함께 한 호시카와 가즈에(70, 일본 사이타마현 니이자)는 "일본에 소녀상이 세워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둘러싼 시민운동의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훼방은 차치하더라도 우편향 일색인 언론 생태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성하고 있다는 게다.


"일본 미디어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70%가 보상금을 받은 만큼 사실상 끝난 문제'라고 보도합니다. '보상금을 받기를 거부한 피해자들에 대해선 정대협 등 일부 여성단체가 악의를 갖고 배후 조종을 한다'고 묘사합니다."


이날 수요집회 자리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가득 메웠다. 몇몇 청년들은 뒤편에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충북 청주에서 올라온 두 여중생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김복동 할머니에게 전달할 안개꽃 다발을 한아름 안고 있었다. 호시카와씨는 그런 모습을 '에네르기'로 함축했다.


"우리들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진짜 소수파예요. 나이 든 어르신들만 아베 정권 반대에 나서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한국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청년들이 주축이 돼 활동하는데, 일본은 젊은 사람들 가운데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러워요. 한국의 '에네르기'를 받아서, 그 힘을 받아서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돈만 준다 해서 문제 해결 안돼... 일본 정부, 성실하게 사죄해야"


▲햇볕이 내리쬐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자리잡은 소녀상에서 기세 게이코(첫줄 맨 오른쪽), 스즈키 유코(뒷줄 맨 왼쪽), 호시카와 가즈에(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등 '헌법9조 세계로 미래로 연락회(약칭 '9조련')' 회원들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분홍 나비, 보랏빛 나비가 넘실대는 현수막이 이채롭다. 현수막엔 "한일 ‘합의’는 해결이 아니다. 우리들은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 걷는 할머니들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는 글귀가 우리말과 일본어로 쓰여 있다. ⓒ 박동우



아베 정권이 요지부동인 사이, 한국엔 새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공연히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재협상을 공언했다. 그는 지난 3월 5일 부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일본의 법적 책임과 공식 사과가 담기지 않은 합의는 무효이며, 올바른 합의가 되도록 일본과의 재협상을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호시카와씨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돈만 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재단 계좌에 10억 엔(약 100억 원)을 보냈다고 해서 책임이 끝나는 게 아니다. 피해자들 앞에서 성실하게 사죄해야 한다.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건데 그걸 안하는 게 문제다." 


집회가 끝났다. 9조련 회원들은 소녀상을 둘러싸고 단체사진을 찍은 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대구 중구 서문로1가의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둘러보자니 가만히 있을 여유가 없었다.


박동우 기자 pdwp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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